사우다지(Saudade) 쓴 것


포르투갈어인 사우다지는 부재에 대한 감정이다. 슬픔과 애정과 우울함과 공허함이 섞인 이 감정은 지금 함께할 수 없는 어떤 것-떠나간 사람, 죽은 이, 오래된 추억, 심지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것도 포함한다.

멀리 떨어진 가족을 향한 사우다지
어린시절 추억의 장소를 향한 사우다지
죽은 부모를 위한 사우다지
존재한 적 없는 상상 속 존재를 향한 사우다지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음식을 향한 사우다지 등등.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사우다지를 가장 쉽게 느끼는 방법은 책을 읽거나 만화를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다. 정말로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있다면 마지막 챕터를 넘기기가 어려워진다. 이야기가 완결되면 더 이상 등장인물의 삶은 진행되지 못한 채 거기에 멈춰 서 있는 것이다. 물론 상상이나 2차 창작을 통해 이야기가 지속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새로운 이야기이지 '그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이야기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죽음을 맞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받는 이야기가 속편으로 돌아오면 열광한다. 죽었던 친구가 살아 돌아오는 것이니까.

어렸을 때 요술망아지 브링크라는 TV 애니메이션의 최종화가 방영하던 날 마지막회를 보고 나서는 울고 말았다. 더 이상 저 이야기 속의 인물들의 삶을 지켜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때 이후 항상 소설, 만화, 영화 등 각종 미디어에 나오는 이야기가 끝을 맺을 때 찾아오는 이 감정에 힘들어했다.

이번에는 20년 전에 5화까지 보다 말았던 애니메이션 '핸드 메이드 메이'를 끝까지 다 보았다. 총 11화짜리 - 소위 말하는 1쿨의 짧은 이야기였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졸작은 아니지만 명작이라고 불리기엔 많이 부족한, 2000년대 당시 쏟아져나오던 양산형 작품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엄청나게 감동적인 스토리인것도 아니었는데 평소보다 사우다지가 강하게 찾아왔다는 점이다.
이상하다 싶어 밖으로 나와 한 30분 정도 산책을 했다. 또 다른 사우다지의 자극 요소인 저녁 노을이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느끼는 이 그리움의 근원은 이 작품을 처음 보았던 2000년이었다. 그 때 일부만 보고 그만 두었다가 20년 후에 완결된 내용을 보면서 내 의식은 11화의 짧은 이야기가 아니라 마지막화를 보기까지 걸린 20년의 세월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하고, 이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나 자신을 비춰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더해 이러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깊은 관계가 가까이에 없다는 것이 울렁임을 재촉하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수 많은 이야기들을 보고 듣는 중 나 스스로의 이야기는 멈춰 선 듯한 자괴감 또한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떨쳐낼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즐기는 수 밖에. 미봉책이지만 또 다른 이야기로 사우다지를 덮어야겠다. 그게 비록 다른 사우다지를 불러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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