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ov&Austro : Triangular contest 003

로마노프의 이름은 로베르트 로마노프입니다.
이름이 아니라 성만 자꾸 부르니까 이상해서 수정했습니다.

의문의 기둥이 검은 탑 앞뜰에 떨어진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모두가 당황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코뜰새 없는 일주일을 보낸 것은 다름 아닌 검은탑 소속의 마법사들이었다. 지상의 탑만큼이나 지하에도 상당한 크기의 연구시설이 있었기에 그들이 입은 피해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몇몇 마법사들이 실험을 위해 키우던 각종 괴물들이 그 틈을 타 뛰쳐나오는 것을 잡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덕분에 연구시설 전체를 관장하는 오스트로는 몸살이 나서 휘청대는 몸으로 검은 탑 꼭대기에 마련된 임시 대책 본부 천막 한켠에 반쯤 실신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쉬어도 들어가서 쉬지 그러냐. 이만하면 대충 정리는 끝난 것 같다만."

"회장님이 오시든지 바람의 탑에서 답신이 오든지 일단 눈 좀 붙이고 있을 테니까 뭔 일 있으면 깨워."

로베르트가 보기에도 오스트로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항상 잘 땋아서 어깨 뒤로 넘기던 콧수염은 어떻게 묶은 것인지 뒷머리와 연결되어 어디서부터 머리카락이고 콧수염인지 분간할 수 없었고, 왼쪽에는 보라색, 오른쪽에는 붉은색 토시를 끼고 남은 두 쌍의 토시를 묶어서 눈을 덮었다. 로베르트의 기억으로 오스트로의 붉은색 토시는 특수상황을 뜻했다.


"오스트로, 너 토시 좋아하는 건 나도 잘 아는데, 보라색은 내가 본 적이 없다. 보라색은 무슨 뜻이냐?"

"취침용."

"전에 밖에서 잘 때는 녹색이었지 않나?"

"연두색이야. 그건 야외취침용이거든. 거 참, 로베르트 로마노프 씨. 인간의 기본 욕구는 충족시키게 도와줍시다. 나 잔다는데 자꾸 묻지 마."

로베르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탑 건너편에 거대한 중량감을 자랑하는 기둥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기둥은 70도 정도의 각도로 지면에 쳐박혀 있었지만, 똑바로 서 있는 탑보다도 훨씬 높았다. 검은 탑의 높이가 대략 80피트인데도 기둥의 꼭대기가 한참 위에 보이는 것을 보면 파묻힌 부분을 포함해 대략 200피트는 되어 보였다. 기둥 꼭대기에 올라가 본 조사반의 보고에 따르면 기둥의 정상에는 대들보만한 기둥이 꽂혀 있으며 기둥을 타고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가 적혀있다고 했다. 이에 로베르트는 글씨의 탁본을 만들어 은퇴한 옛 현인들이 산다는 바람의 탑에 해석을 요청했다. 엘하임 왕국 내에서 사용되는 모든 마법을 추적·기록·연구·조사하는 마법총국이 세워진 지 겨우 한해를 보낸 이 때, 벌써부터 남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게다가 제대로 낙하했다면 자칫 왕국 전체의 문제로 번졌을 이 사태로 인해 왕궁에서는 작년에 마법학회와 마법총국으로 나눴던 것을 사건이 종결될 때 까지 임시로 원래 모습인 왕립 마법사협회로 합쳐 속히 일을 종결할 것을 지시했다. 왕국으로서는 두개로 나뉜 인력을 모두 동원해 조속한 처리를 원한 것이지만, 로베르트로서는 달갑지 않은 명령이었다.

"복구작업은 잘 되어가느냐?"

낯익은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있던 로베르트를 퍼뜩 깨어나게 했다. 고개를 돌리자 머리가 사방으로 뻗친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다.

"스승님? 아이쿠, 오신 줄도 몰랐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오시는 길에 전령이라도 먼저 보내셨으면 준비를 했을 텐데 아이고…"

로베르트의 스승이자 임시 왕립마법사협회 회장, 말키슈아 얼스브로는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됐다. 저기 널브러져 있는 건 오스트로냐? 연구장이 되었다길래 좀 나아졌나 했는데 맨날 저모양 저꼴이로군."

"하하, 최근 사흘 정도 잠을 못잤거든요. 난리가 말도 아니었습니다. 저런 물건이 아무리 천천히 내려왔어도 그 무게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지하 연구동 반쪽이 다 날아간데다 거기서 흘러나온 유독 물질 처리에 온갖 괴물들 잡아들이느라 고생 좀 했지요. 오늘 오신다는 말씀 듣고 아침부터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저놈이 키우던 불뿜는 말 하나가 새벽에 탈출하는 바람에 방금전까지…"

"잡았나?"

"죽였습니다. 죽이자마자 마법식이 붕괴해서 증발했습니다."

"에잉, 재밌는 구경거리를 놓쳤군."

"참, 이카보스는 왔습니까?"

자기 아들의 이름이 나오자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아래에 있다. 아직도 철이 없어."

말키슈아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기둥 근처를 가리켰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검은 옷의 마법사들 사이에서 천천히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붉은 옷의 청년이 눈에 띄었다. 로베르트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선 말키슈아에게 말했다.

"저…아직도 이카보스는 절 싫어합니까?

"…."

"스승님. 제가 총국장이 되면서 고위 클래스의 마법사들을 총국으로 오도록 한 것은 사실입니다. 상대적으로 학회에는 낮은 수준의 마법사만 남은 것 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만, 사실 제가 한 것은…음, 지금부터 말하는 건 비밀입니다. 전 신진 마법학자들에게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방향으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전 방식을 고집하는 분들을 데리고 나온겁니다. 그분들이 있는 이상 젊은 마법사들은 발전하기 힘들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스승님도 이전 마법 체계에 대해 계속 반론을 제기해 오셨구요."

"…노선배들은 어떻게 지내시는가?"

" 그분들은 지금 새로 짓고 있는 붉은 탑에 들어가게 됩니다. 최고의 대우와 아낌없는 지원을 할 겁니다. 한분은 바람의 탑으로 곧 가신답니다."

"나도 바람의 탑의 지명을 받았지. 5년 안에 나도 그 동네에 들어갈 생각이다. 그 전에 너와 이카보스가 화해하는 걸 봤으면 좋겠구나."

로베르트는 고개를 숙였다.

"겉으로는 말도 잘 하고 지냅니다만…가끔 툭툭 던지는 말들을 보면 저와 비교되것이 참 싫은가 봅니다."

"그럴만도 하지. 엘하임 마법계의 최연소 신기록은 네가 다 갈아치우지 않았더냐. 내 아들 또한 재능이 있기는 하나 네게는 못미치지."

말키슈아의 말에 로베르트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재능이 있는 정도가 아니죠. 이카보스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입니다. 나이 스물에 6클래스라니, 전 그 나이에 4클래스 근처를 뱅뱅 돌고 있었는걸요."

"스승을 놀리는게냐? 이카보스는 올해로 스물아홉이다. 거의 10년째 6클래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너는 그 후 4년만에 7클래스가 되었고. 둘 다 어려서부터 내 손으로 키워본 바에 따르면, 재능의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내 아들이 100년에 한번 나올 천재라면, 넌 만년에 한번이다."

그때, 누워있는 것인지 앉아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자세로 늘어져있던 오스트로의 입이 열렸다.

"거 참, 사제지간에 무뚝뚝한 척 하면서 결국은 아들자랑에 제자자랑하시는군요. 그나저나, 만년은 좀 깁니다. 저도 있으니 만년에 두번 나온 꼴이니까 오천년에 한번 나올 천재로 하죠."

오스트로가 뱉은 말에 로베르트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야임마! 깼으면 얼른 일어나서 인사를 드려야지! 어디서 감히 스승님께 망발이냐!"

오스트로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오뉴월 흐늘거리는 빨래마냥 인사를 하는지 술주정을 하는지 모를 소리로 중얼거리는 모양새를 보고 말키슈아는 혀를 찼다.

"쯧쯧, 넌 더 자라. 나중에 제정신 들거든 오너라. 로베르트."

"네."

"학회 쪽에서 너희가 요구하는 건 최대한 지원하게 될게다. 복구작업은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느냐?"

드디어 본론이 나오자 로베르트는 바로 테이블에 놓인 책자를 펴들어 말키슈아에게 건넸다.

"네. 일단 긴급작업은 끝난 상태입니다. 하지만 상당량의 기물이 파손되고 지하연구동 내부 또한 온갖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뒤죽박죽 섞여있어서 각 시설을 사용한 마법사 전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학회 쪽에서 자재와 연구 재료, 인원을 보내주신다는 가정 아래 계산한 결과, 늦여름이나 초가을까지는 작업을 끝낼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리고, 저 기둥은?"

"기둥은 해체해서 건축자재로 쓰거나 연구용으로 사용할 겁니다. 지금 성분을 분석중인데 조사반 말로는 가죽같기도 하고 금속같기도 한 것이 묘하답니다. 아, 다음 페이지를 보시죠. 기둥 꼭대기에 그려진 이상한 글씨 비슷한 것의 필사본입니다."

말키슈아는 로베르트의 안내대로 세심하게 베낀 글씨를 살폈다.

"일단 고대어 계열인건 확실하군. 이런 모양의 표기법을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구 엘멘토르 제국어와 비슷하게 생겼군."

"해석하실 수 있겠습니까? 전 해석할 수 없어서 바람의 탑으로 탁본을 보냈습니다."

"나도 해석은 불가능해. 다만 표기법은 여러 가지 언어로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찾아본 적이 있지."

로베르트는 책을 잡은 말키슈아의 손이 움찔거리는 것을 눈치챘다.

"무슨 단어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말키슈아는 책을 덮어 내려놓고는 두 손을 꽉 쥐며 말했다.

"내가 읽을 수 있는 단 두 글자는 '라가'다. 마왕 라가. 역사상 최악의 이름. 그놈이 이 기둥의 주인인 모양이다."

by 서방로보 | 2009/10/11 00:47 | Write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sbrobo.egloos.com/tb/513759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