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ov&Austro : Triangular contest 001

R&A 시리즈 단편입니다. 예전에 읽으신 분들께 설명드리자면, 두 늙은이 주인공 로마노프와 오스트로의 40여년 전 이야기, 그러니까 아직 50대 젊은이(…)일때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무래도 좋았다. 하얀 하늘 아래 푸른 나무들이 신록의 물결을 그리는 가운데 가르마처럼 난 오솔길을 달리는 것이 좋았고, 바람도 상큼한 것이 말들 또한 좋은지 달리 다그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분 좋게 달려 주었다. 짙은 갈색 스카프가 바람에 나풀거리며 턱끝을 간지럽히자 가벼운 졸음이 몰려왔다.오늘같이 기분 좋은 날도 별로 없지.

"꽃피는 3월!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생명의 기운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3월! 이곳 저곳에서 물을 흠뻑 머금은 꽃봉오리들이 고개를 쳐드는 3월! 나무들은 기지개를 켜는 3월! 나도 한껏 기지개를 켜는 3월!"

저것만 없었으면. 마부석 위에서 누린 3월의 평화는 뒷자리 손님에 의해 짓밟히고 말았다. 뒷자리에 앉은 다른 남자가 평화를 파괴한 남자를 규탄했다.

"오스트로, 시끄러워."

"10분 전에도 그 말 했잖아. 10분간 닥쳐줬으니 이제 말 좀 하자."

"그렇다면 10분 주기로 성실하게 닥쳐줘. 너의 시 낭송은 인류의 재앙이다. 사실상 낭송을 하지 않아도 내용 자체만으로도 재앙에 가깝지만."

"내 쓴 시가 재앙이면 네가 쓴 시는 우주의 재앙이다!"

"나이 오십 먹고 유치하기가 이를 데 없군. 그리고 난 시 안써."

엘하임 마법계 전체를 아우르는 마법총국의 수장과 마법총국 연구동 전체의 통솔권을 가진 연구장의 대화라고 하기엔 너무나 영양가 없는 대화. 마법총국 수송부 소속의 이름모를 마부는 결국 자신의 평화는 이 인간들을 총국에 데려다 놓을 때 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법총국의 중앙연구시설인 검은 탑은 그 크기에 비해 상주하는 인원은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상상도 못할 일을 만들어내는 마법사 중에서도 제일 미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검은 탑에서 일어나는 각종 실험들은 대부분 미친 짓이다. 그리고 그 미친놈들의 우두머리가 총국 우편집중실에 나타났다.

"어이, 내 앞으로 편지온 거 있냐?"

오스트로를 알아본 우편집중실 소속 직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아! 다녀오셨습니까? 두분 다 제로아 부국장님께 업무를 위임하고 가시는 바람에 지난주에 과로로 쓰러지실 정도였답니다. 학회 쪽에서 대외 업무와 연구협력 요청 몇건이 있었는데 전부 처리는 됐습니다. 그 외에 연구장님 앞으로 개인이 보낸 편지 두 통이 있구요."

그의 가벼운 투덜거림에 오스트로는 턱수염을 배배 잡아 꼬며 대꾸했다.

"왕세자 책봉의례가 한달 넘게 걸리는 줄은 몰랐지. 그나저나 제로아 부국장님도 너무 책임감이 강하단 말이야. 좀 많다 싶으면 우리가 돌아왔을 때 넘겨주면 될 일을 다 한다고…참. 아무튼, 나한테 온 편지가 있다고 했지? 이리 줘. 어디 보자…이건 쓸데 없는 편지고, 오! 카드쟁이 아이-빈이 편지했네?"

"아이-빈이라면 그 이름난 예언자 말씀이십니까?"

직원은 흥미가 있는 눈치였다. 오스트로는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봉투칼을 집어들었다.

"작년 세미나 때 왔길래 몇번 이야기를 좀 나눴지. 이 친구가 사람을 좀 볼 줄 안다니까? 참, 이 편지 언제 온 건가?"

"잠시만 기다리세요. 대장을 보면…에…2월 11일날 온 편지네요. 총국을 떠나신지 이틀 후에 온 겁니다. 벌써 오늘이 3월 15일이니까 한달이 넘게 지났군요."

직원의 말에 오스트로는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에 이 편지가 예언의 내용이라도 담겨 있었다면 이미 시기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오스트로는 황급히 봉투칼로 편지를 개봉했다.




"예언이군."

"예언이고 자시고 요즘 잘나간다는 놈이 왜 자세하게 써 주기는 커녕 달랑 카드 세장만 넣어두냐고!"

한달음에 계단을 내려와 2층 국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오스트로는 로베르트에게 아이-빈이 보낸 것을 보여주었다. 봉투 안에는 다른 설명 하나 없이 카드가 3장 들어있었다.

스페이드 킹, 하트 3, 그리고 조커.

진저리나게 추운 국장 집무실 안에서 두 사람은 이내 입을 다물고 테이블 위에 놓인 세 장의 카드를 뚫어지게 주시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로가 험담을 하긴 했지만 위험하거나 중요한 예언은 예언을 한 사람에게도 부담이 오기 마련이므로 이렇게 제한된 내용으로 예언을 했다면 분명 보통 예언은 아닐것이 분명했다. 먼저 생각을 정리한 것은 로베르트였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냉장통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며 말했다.

"아이-빈은 2월 초순에 이 편지를 부쳤을 테지. 산골에 사니까 어쩌면 더 걸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사람 정도라면 세자 책봉 소식을 모를리 만무하고. 아마 우리가 지금 이 편지를 볼 것을 예겠했겠지. 그가 우리를 위해 예언을 준비했다는 의미로 하트 3이 3월을 말하는 것일수도 있다."

오스트로는 아이스크림을 우물거리며 반박했다.

"내 생각엔 3이 3을 가리키진 않을 것 같은데? 3월에 열어볼 줄 알았다면 굳이 카드 한장을 그렇게 낭비할 이유가 없다. 난 3은 모르겠다만, 스페이드 킹이 좀 수상하다. 얼마 전 세자 책봉도 있었으니까. 혹시 반란이 있을지도 몰라. 하악, 차다."

"그가 숫자를 통해서 예언하는지 그림을 통해서 예언하는 건지 그걸 먼저 알아야겠어. 아니, 두 가지를 모두 합쳐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이런 종류의 예언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게다가 이런 예언에 조커가 끼어있다니 더 골치가 아파. 결국 예언을 해석해도 조커가 있다는 건 예언에도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아냐?"

"잠깐! 어쩌면 네 말대로 3이 3월인지도 모르겠다."

로베르트의 눈썹이 꿈틀했다.

"오스트로, 아까는 내 말이 틀렸다면서? 이제와서 또 무슨 소리야?"

로베르트의 말에 오스트로는 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푼을 쭉 빨아낸 다음 그것으로 조커를 탕 내리쳤다.

"우리가 의미만 생각하느라 정작 그림을 놓쳤어. 이 카드 이상하게 생겼지 않냐?"

로베르트는 다시한번 카드를 자세히 살폈다. 오스트로가 가리킨 조커 카드 안에는 광대가 일반적인 카드와 다를 바 없이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달!"

"그래. 멍청한 제자야. 보통 조커에 나오는 달은 초승달이잖아? 여기엔 배경으로 크게 그려져 있어서 오히려 눈치채기 힘들었지만, 보름달이 뒤에 떠 있다고."

순간, 두 사람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오스트로는 수염이 빳빳하게 서는 것을 느꼈다.

"야, 오늘 몇일이지?"

"3월 15일…당장 밖으로! 보름달이 떴는지 확인해야 해! 뭔가가 있다!"

by 서방로보 | 2009/10/05 11:08 | Writ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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