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의 글 생각

이전 포스트에서 소개했었던 근무지 교장선생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굵은 글씨는 교장선생님의 글이고 보통 글씨는 제 글, 푸른 글씨는 제가 수정한 문장입니다.
졸업장을 주면서
(사실 제목부터 좀 문제가 있습니다만 넘어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졸업생 여러분,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합니다.
→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부분에 성의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졸업생을 대하는 문장이라면 대견한 마음이나 칭찬이 나와야 하는데 문장의 시각적 위치가 서 있는 화자, 앉아있는 청중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문장으로 글의 첫머리를 시작하게 됩니다.
수정 : 오늘 이 자리를 함께 하게 된 졸업생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신 학부모님, 모든 분들께도 정성스런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 쉼표가 쓸데없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에서 '정성스런'을 쓰면 '내가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 자신을 높이게 되는 느낌이 들게 되므로 '마음을 담아'로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정 :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신 학부모와 모든 여러분께도 마음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38회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우리 학교를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졸업식을 계기로, 우리 'XX고등학교'는 여러분의 모교가 됩니다.
→일단 말이 안됩니다. '학교를 떠나려 하고 있다'라는 어정쩡한 상태표현은 아름답지 못한 문장이며 학교를 떠나지 않아도 모교는 모교입니다. 그리고 학교명에 작은따옴표를 붙일 필요 또한 없습니다.
수정 : 38회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오늘부로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모교 관련 문장 삭제)
 
 여러분이 'XX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것, 그 것은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바꿀 수 없는 하나의 사실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제 저는 모교가 되려는  'XX고등학교' 를 대표하여, 넓은 세계로 떠나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덕담 겸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 전형적인 만연체입니다. 띄어쓰기도 문제가 있군요. 전 문장과 이어지는 '그러나'도 넣어야겠습니다.
수정 : 그러나 여러분이 본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 결코 바꿀 수 없는 사실로 남게 됩니다. 저는 이제 넓은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 졸업생 여러분을 위해 모교를 대표하여 몇가지 덕담과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인간은 빵을 얻기 위하여 눈물을 꾹꾹 참고 살아가는 데에서 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 입니다. 비록 삶이 힘들고, 능률이 오르지 않고, 생활이 궁색하여도, 하던 노력과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모질게 살아가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 첫째 후 줄바꿈은 필요없는 공간 소비입니다. 그리고 큰따옴표 또한 필요 없습니다. 문장 또한 따오는 부분에서 망가지고 있습니다.
수정 : 첫째,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눈물을 참고 고난을 견디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을 수 있고 뜻하는 만큼 얻지 못하는 일도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든 삶 때문에 의지를 꺾고 자신의 노력과 삶의 목표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 빵을 위하여 명분 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 자기 분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는 다함께 사는 사회에서의 매우 초보적인 상식을 지키지 않은 결과를 가져와 남에게 피해를 줄뿐만 아니라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 불행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나눠주는 용도로는 이런 식의 분할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졸업식 훈화로 쓰려면 온전한 문장을 만들어야겠죠. 그리고 아직까지도 고압적인 문장이 보이는군요. 자기 분수를 알라니…
수정 : 그러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이나 도를 넘어선 욕심은 자제해야 합니다. 이것은 함께 사는 사회에서 기본이 되는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삶은 타인에게는 피해를, 자기 자신에게는 불행한 삶을 남기게 됩니다.
 
 둘째,
 생활인이 되어 하루하루 살다 보면 옳은 일과 옳지 못한 일에 대한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 생활인은 너무 철학적인 단어입니다. 이 글을 보는 사람은 고등학생이므로 '사회인'이 더 친근하겠군요.
수정 : 둘째,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언젠가는 옳은 일과 옳지 못한 일에 대한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 때 가치로운 선택을 함에 있어서, 심한 갈등이 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 쉼표는 삭제. '가치롭다'는 딱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표준어로서 사전에 실려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덜 껄끄러운 '가치있다'로 수정합니다. 문장은 전체적으로 오래 묵은 문체군요.
수정 : 이 때 가치있는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심한 갈등을 겪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여러분들은 새는 날 아침, 잠에서 막 깨어나 맑은 정신이 들 때 "각자의 소박한 양심에 물어보아 올바른 자기 양심의 판단대로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단한데 장황한 사족이 붙어있습니다.
수정 : 이러한 때에 여러분들은 각자의 양심의 소리를 듣고 올바른 길을 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선택하여 행한 행동은 죄책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후일에 바르게 선택하여 살았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졸업식 훈화용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런 문장에는 쉼표 하나 넣어도 되는데 여기엔 한개도 안보이네요.
수정 : 이렇게 길을 택하면 죄책감도 없을 뿐더러 훗날 바른 선택을 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학교를 떠나 바쁘게 살아가다보면 청운의 꿈을 잃기 쉽습니다.
 현실에서 지치거나 만족하지 말고, 학창시절처럼 청운의 꿈을 가져 주길 바라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 발전해 주길 바랍니다.
→'청운의 꿈'이라는 고전적인 단어가 첫 문장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문장에서도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군요. 반복된 인용어의 사용은 글의 흐름을 방해합니다(그 전에 글쓴이의 자의식이 문장을 파괴하고 있지만)
수정 : 셋째, 학교를 떠나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젊은 시절의 꿈을 잃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된 삶에 지칠지라도 끝까지 청운의 꿈을 잃지 않는 여러분이, 현실에 안주하는 삶 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와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각자의 가는 길에 건강과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또한 이 자리가 있기까지 따뜻한 보살핌으로 가르쳐 주신 여러 선생님들과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 및 참석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맨 첫 문단과 별 다를 게 없는 내용입니다. 부모님의 위치가 좀 찬밥신세같지만 크게 위화감은 없군요. 다만 끝맺는 말이므로 윗 문단과의 연계성도 고려해야겠습니다.
수정 :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진심으로 여러분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여러분 앞에 펼처질 모든 미래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또한 이 자리가 있기까지 따뜻한 보살핌과 열정으로 가르쳐 주신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수고해주신 부모님 및 참석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나마 이번 글은 교장선생님께서 썩 잘 쓰신 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에 교육잡지에 실을 논문의 초안을 교정 볼 적에는 문장 구조가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얽혀서 문장 하나 고치느라 문단 두개를 들어내고 다시 쓸 정도였거든요(…)

덧글

  • 이피 2007/02/04 02:30 # 삭제 답글

    이러한 대필 관련 포스트를 볼 때마다 서방로보님의 진짜 전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 ROBO 2007/02/04 07:30 # 답글

    막 슬퍼지려고 합니다...
  • rezen 2007/02/04 12:22 # 답글

    로보님은 이런때도 참 능하십니다.
  • 소시민A군 2007/02/04 17:04 # 답글

    지식과 말빨은 별개의 문제라는 진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 ROBO 2007/02/05 08:06 # 답글

    rezen - 고맙습니다.
    소시민A군 - 맞습니다. 그래서 전 남의 지식을 이용해 말빨로 때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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